미풍 그친 '행동주의펀드의 반란'…남긴 과제는 [더 머니이스트-송태헌의 스마트펀드]

입력 2023-06-07 07:30   수정 2023-06-07 11:06


올해 주주총회 시즌의 가장 큰 화두는 행동주의 펀드였습니다. 감사 선임에서부터 주주 제안까지 수많은 주제들이 이슈가 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전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는 평입니다.

행동주의 펀드는 조용하던 회사에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고 단기 수익을 얻은 뒤 떠나려는 '기업사냥꾼' 또는 '먹튀'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간 우리나라 기업이 상대적으로 낙후됐다고 평가되던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 주주가치 제고를 촉구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상반된 평가도 존재합니다.

어떤 쪽의 평가에 동의하건 우리나라 기업들이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주주환원이 미흡했던 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인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가가 적정가치만큼 평가 받을 수 있도록 저평가 원인 해소에 힘쓰는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현상은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의 속성상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기업은 본원적 수익을 창출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창출된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기업이 창출한 순이익은 크게 기업 내부에 유보하거나 주주에게 환원하게 됩니다. 주주환원은 다시 배당을 통해 직접 현금으로 주주에게 분배하거나 회사가 시장에서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해 상장주식수를 감소시키는 방법으로 나뉩니다.

여기서 순이익 중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으로 사용된 금액의 비중을 주주환원율이라고 부릅니다. 기업이 창출한 순이익의 지분은 주주에게 있으므로 기업이 번 돈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얼마만큼 사용하였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해당 기업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증시 상장기업의 평균 주주환원율은 28%입니다. 순이익의 대부분을 주주에게 환원하는 미국의 주주환원율이 89%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그 차이가 상당합니다. 이는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의 68%, 이머징국가 38%에도 못 미치는 세계증시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주주환원율입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기업이 주주가치 제고에 소홀하게 된 이유로 많은 시장 참여자들은 지배주주 중심의 기업 지배구조를 꼽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배주주는 일반주주 대비 낮은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성과를 주주에게 적극적으로 환원하기보다는 경영자인 지배주주에게 유리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기업 내부에 유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것이고요. 특히 일반주주의 지분율이 지배주주의 지분율보다 높은 상황에선 다수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의 가치가 소수의 지분을 가진 주주에 의해 소외되는, 주주 자본주의의 원리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나라 주식을 보유하고 싶은 매력도를 떨어트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우리나라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글로벌 선도기업인 애플의 비교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2016년 말 이후 작년 말까지 애플의 평균 주주환원율은 100%를 웃돕니다. 이는 당해 벌어들인 순이익뿐만 아니라 과거에 발생한 이익으로 회사에 적립돼 있는 현금을 자사주 매입이나 소각을 위해 추가적으로 사용했단 의미입니다. 그 결과 애플의 상장주식수는 25%나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애플의 순이익은 110% 상승했지만 주당 순이익은 상장주식수 감소로 182%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반면 삼성전자의 경우 같은 기간 평균 주주환원율은 30%를 밑돌며 신흥시장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 시기 삼성전자의 순이익 증가율은 144%로 애플을 웃돌았지만, 2018년 이후 자사주 매입을 시행하지 않으면서 주당순이익 증가율은 155%로 애플을 밑돌았습니다. 그 결과 2016년 말 대비 작년 말 애플의 주가수익률은 348%로 삼성전자의 53%와는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삼성전자의 이익 성장률이 애플을 능가하는 시기를 특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기업의 주주가치의 차이는 현격한 수준으로 벌어졌습니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주주환원정책의 차이가 주가수익률의 격차를 모두 설명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삼성전자의 주가는 미래수익성 하나로 외끌이 되는 반면 애플의 주가는 미래수익성과 더불어 주주환원정책으로 쌍끌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부진한 주주가치 보호를 개선하기 위해서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의 비례적 이익도 함께 보호하도록 개정하자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이사의 법적 의무의 범위는 회사만을 포함할 뿐 주주에 대한 의무는 제외돼 있습니다. 사실 영미권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주주가치의 보호가 우리나라에서는 법제화돼 있지 않다 보니 법적 분쟁이 있는 경우에도 주주 이익이 보호되지 않는 방향으로 법원의 판단이 나오는 게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와 주주를 위해'라고 바꾸고 주주의 이익보호를 제도화해 주주의 1주당 가치를 비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습니다.

자본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팬데믹 이후 국내 투자자들이 '서학개미'라고 불리며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쉽게 투자국경을 넘고 있습니다. 그간 국내 주식투자자들은 정보의 비대칭과 제도의 미비로 주주이면서도 주주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정보의 비대칭이 옅어지면서 일반주주가 본인이 주주로서 홀대받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그 대체제가 부각되면 국내 기업에 대한 투자 매력도는 향후 더 감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종종 우리나라 가계자산중 부동산 비중이 높고 금융자산의 비중이 낮은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주주가 주주로 대접받지 못하는 자본시장의 환경이 금융자산에 투자하지 않는 주요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행동주의 펀드의 주장은 그간 주주로 대우받지 못했던 주주의 자기권리 찾기 운동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사냥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암행어사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외치는 출두 구호는 "문제는 지배구조야!"(It's the Governance!)였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송태헌 신한자산운용 상품전략센터 수석부장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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